마음에 드는 시

오늘의 날씨 / 송미선

주선화 2024. 1. 29. 10:51

오늘의 날씨

 

-송미선

 

 

미리 써 둔 일기장이 발화점이었어요

예상 밖이라 하겠지만 다락방에서 첫 페이지를 열은 건 사실이죠

 

실수로 태어난다고 생떼 부리는 첫 장을 찢어버리고 싶지만

거슬러 흐르는 강물은 본 적이 없거든요

밤이면 명치를 쓸어내리다

옆 사람의 박수소리를 듣고 손뼉을 쳤어요

약지 끝에 단단한 굳은살이 만져지는데

티눈은 아니라네요

 

거절이 익숙지 않아 자주 더듬거려요

노랗게 질린 입술이

차마 못한 말들을 일기장에 눌러 담아요

분류번호처럼 하나씩 이름을 지으면서요

 

마음은 옮겨간다는 말에 붉은 펜으로 밑줄을 긋고

 

일기장에 내키는 대로 날씨를 썼어요

 

칠월 어느 날의 날씨 칸에 눈사람을 그려 넣었더니

날개가 생기더군요

북두칠성을 머리에 이고

쪽수도 없는 페이지를 넘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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