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슬픔
-신용목
닫히지 않는
문,
언젠가 모텔에 가서 보았지, 투명해서
닫아도 닫히지 않는 욕실의 그
문, 알몸이 후회처럼 비치는
문, 집이 있어서
빌려주는 집도 있는 거라면
빌려주는 잠도 있는 거라면, 빌려주는
슬픔도 있어서
창 너머
달
알겠네, 세상의 동전들이 왜 하나같이
둥근 것인지
세상의 저녁이 왜
지폐처럼, 한 장씩 지울 수 없는 얼굴을
새겨놓는지
버릴 수 없는지
여기는 갯벌이 있고, 갯벌에 박힌 배가 있고
물이 들면
저만치서 달이 건너옵니다. 나는 모텔
욕실에 걸린 수건 한 장을 들고 나와,
출렁이는 달에 손을 담가
배를 놓아주고
젖은 손을 닦습니다. 배가 풀어놓은 흰
그늘을 적셔 갑니다. 바다를 빌려 갑니다. 얼굴을
동전처럼 던져 놓고
모텔로 돌아와
달처럼 수건을 걸어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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