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빌린 슬픔 / 신용목

주선화 2024. 6. 26. 12:53

빌린 슬픔

 

-신용목

 

 

닫히지 않는

문,

언젠가 모텔에 가서 보았지, 투명해서

닫아도 닫히지 않는 욕실의 그

문, 알몸이 후회처럼 비치는

문, 집이 있어서

빌려주는 집도 있는 거라면

 

빌려주는 잠도 있는 거라면, 빌려주는

슬픔도 있어서

창 너머

 

 

알겠네, 세상의 동전들이 왜 하나같이

둥근 것인지

 

세상의 저녁이 왜

지폐처럼, 한 장씩 지울 수 없는 얼굴을

새겨놓는지

 

버릴 수 없는지

 

여기는 갯벌이 있고, 갯벌에 박힌 배가 있고

물이 들면

저만치서 달이 건너옵니다. 나는 모텔

욕실에 걸린 수건 한 장을 들고 나와,

출렁이는 달에 손을 담가

배를 놓아주고

젖은 손을 닦습니다. 배가 풀어놓은 흰

그늘을 적셔 갑니다. 바다를 빌려 갑니다. 얼굴을

동전처럼 던져 놓고

 

모텔로 돌아와

 

달처럼 수건을 걸어놓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