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도 더 된 아주 작은 동그라미 때문에
-이 원
어제 간 곳에 오늘 또 가야 한다
유리 진열장은 세 칸이었다
몸 하나가 겨우 지나갈 틈으로 들어가면
맞은편에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같은 진열장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한참 동안 무릎을 접고 있다가 맞은편의
눈과 마주쳤다
여기요
저 은색 좀 보고 싶어요
백 년도 더 된 그것 맞지요?
반대편의 그것은 쉽게 내 손에 놓였다
여기 은색 속 이 작은 동그라미 지워질까요?
세정제로 닦으면 지워질까요?
무엇으로 닦으면 지워질까요?
안 지워져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아 선물할 거라서요
이미 펴고 있던 무릎 뒤에 힘을 주고야 알겠어요
돌아 나오는데
당신이 좋아하는 색을 떨어뜨리면
그 백 년도 넘은 작은 동그라미는 가려질텐데
유리 진열장 안에
모래시계 만년필 연필
가죽 필통
중간중간 크리스마스카드와
사과 새 있었다
검은 사과 있었다
투명한 사과 있었다
빨강 사과 있었다
들어찬 것들은 모두 빛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맨 위 칸에 새가 있었다
아주 작은 빛을
아래로 아래로
알처럼 떨어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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