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백 년도 더 된 아주 작은 동그라미 때문에 / 이 원

주선화 2024. 6. 16. 09:45

백 년도 더 된 아주 작은 동그라미 때문에

 

-이 원

 

 

어제 간 곳에 오늘 또 가야 한다

 

유리 진열장은 세 칸이었다

몸 하나가 겨우 지나갈 틈으로 들어가면

맞은편에는 또 다른 것이 있었다

같은 진열장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한참 동안 무릎을 접고 있다가 맞은편의 

눈과 마주쳤다

 

여기요

저 은색 좀 보고 싶어요

백 년도 더 된 그것 맞지요?

 

반대편의 그것은 쉽게 내 손에 놓였다

 

여기 은색 속 이 작은 동그라미 지워질까요?

세정제로 닦으면 지워질까요?

무엇으로 닦으면 지워질까요?

 

안 지워져요 이게 마지막이에요

 

아 선물할 거라서요

 

이미 펴고 있던 무릎 뒤에 힘을 주고야 알겠어요

돌아 나오는데

 

당신이 좋아하는 색을 떨어뜨리면

그 백 년도 넘은 작은 동그라미는 가려질텐데

 

유리 진열장 안에

모래시계 만년필 연필

가죽 필통

 

중간중간 크리스마스카드와

사과 새 있었다

 

검은 사과 있었다

투명한 사과 있었다

빨강 사과 있었다

들어찬 것들은 모두 빛이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리고

맨 위 칸에 새가 있었다

 

아주 작은 빛을

아래로 아래로

알처럼 떨어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