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여름궁전 / 성영희

주선화 2024. 6. 10. 10:53

여름 궁전

 

-성영희

 

 

  폐허를 두들겨 빨면 저렇게 흰 바람 펄럭이는 궁전이 된다. 매일 바람으로

축조되었다 저녁이면 무너지는 여름궁전은 물에 뿌리를 둔 가업만이 지을

수 있다. 젖은 것들이 마르는 계단, 셔츠는 그늘을 입고 펄럭인다.

 

  몸을 씻으면 죄가 씻긴다는 갠지스 강 기슭에서 두들겨 맞다 이내 성자처

럼 깨끗해지는 옷들, 어제 죽은 이의 사리* 를 계단에 펼쳐 놓고 내일 태어

날 아이의 이름을 헹구는 도비왈라들, 거품 빠진 신분들이 명상처럼 마르

고 있다.

 

  이 강에서 고요한 것은 연기 뿐,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밤이면 강물은 다시 태엽을 감고 소리를 잃은 것들은 물결이 된다. 화장

장의 연기도 무시로 강물 따라 흐른다. 앞 물결과 뒷 물결이 섞여 흐르는

이곳에 오늘이 있고 산 자만이 빤 옷을 육신에 걸칠 수 있는 내일이 있다.

 

  물소리를 베고 잠들면 잠결에도 물이 흐를까, 사내들의 팔뚝은 강기슭

을 닮았다. 끊임없이 궁전을 세우지만 그 안에 들 수 없는 불가촉 타지마

할, 하얗게 펄럭이는 그들만의 궁전이다.

 

 

*인도의 여자 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