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궁전
-성영희
폐허를 두들겨 빨면 저렇게 흰 바람 펄럭이는 궁전이 된다. 매일 바람으로
축조되었다 저녁이면 무너지는 여름궁전은 물에 뿌리를 둔 가업만이 지을
수 있다. 젖은 것들이 마르는 계단, 셔츠는 그늘을 입고 펄럭인다.
몸을 씻으면 죄가 씻긴다는 갠지스 강 기슭에서 두들겨 맞다 이내 성자처
럼 깨끗해지는 옷들, 어제 죽은 이의 사리* 를 계단에 펼쳐 놓고 내일 태어
날 아이의 이름을 헹구는 도비왈라들, 거품 빠진 신분들이 명상처럼 마르
고 있다.
이 강에서 고요한 것은 연기 뿐,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온다.
밤이면 강물은 다시 태엽을 감고 소리를 잃은 것들은 물결이 된다. 화장
장의 연기도 무시로 강물 따라 흐른다. 앞 물결과 뒷 물결이 섞여 흐르는
이곳에 오늘이 있고 산 자만이 빤 옷을 육신에 걸칠 수 있는 내일이 있다.
물소리를 베고 잠들면 잠결에도 물이 흐를까, 사내들의 팔뚝은 강기슭
을 닮았다. 끊임없이 궁전을 세우지만 그 안에 들 수 없는 불가촉 타지마
할, 하얗게 펄럭이는 그들만의 궁전이다.
*인도의 여자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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