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소리 좀 줄릴까요?
- 이신율리
아욱국을 끓이자 많이 자랐구나
시간의 길이를 계산하고 있어요
소금 한 주먹 넣고 바락바락 씻어라
보이지 않는 불순물이 많단다
보이는 것도 다 씻지 못하고 살아요
변명은 필요 없단다
푸른 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씻어라
오늘 길이는 대충 계산하고
그런데 일곱 살은 어디로 갔니
라디오 소리가 너무 커요
쌀뜨물을 받아라
잡내 제거에 도움이 된단다
아욱에 무슨 잡내가 있나요
잡내는 어디에나 있단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구별하기 힘들어요
원근법은 무시해도 된단다
멸치 대가리를 떼고 된장을 풀으렴
팔팔 끓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들이 있구나
자다 깬 아욱꽃의 시간도 있어요
한해살이에 집착하지 말아라
멸치가 떠오르는구나
꽃의 온도를 재는 꺾은선 그래프 같아요
아침도 없이 오는 연체이자 같구나
아욱을 쥐어뜯어 넣어라
미끈거려요 미끄러지겠어요
사춘기를 생각하니 부드러움에 집중해라
풋내 없이도 가라앉는 것들이 있구나
가을 아욱국이다 묻 닫고 먹어라
가을까지 살았구나
너무 팔팔해서 걱정이다 넌
분수의 곱셈 없이도 가을은 온단다
숨어드는 잡내를 조심하거라
그런데 너는 몇 살이니 꽃이 작구나
저는 이제 열두 살이에요
소금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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