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가 사랑하는 구멍
- 유선혜
삶에 대해 자꾸 논하고 싶은 게 제가 걸린 병이에요. 잘못된
선택이 모이면 그 인생은 대체로 슬퍼집니다. 제일 슬픈 일은,
자신이 슬픈 줄도 모르는 거예요. 가끔씩 빌라 입구에 나와
사료를 주는 인간이 자기 부모인 줄 알고 살아가는 고아가 된
짐승처럼요. 자려고 누우면 괄호 쳐버린 많은 일이 떠오릅니
다. 일찍 자기. 아침에 일어나기. 적당히 먹기. 적당히 근육과
관절을 움직이고 적당히 울기. 매일 머리를 감고 하루에 30분
이상은 햇볕을 쬐기. 어제는 머리가 간지러워서 잠에서 깼어요.
두피에 난 상처를 박박 긁다가 손톱 밑에 피가 꼈어요. 딱지가
지면 바로 뜯어버렸어요. 가여운 딱지. 머리에 구멍이 났어요.
제가 키우는 귀여운 구멍이랍니다. 조금 더 커지면 야옹 하고
울지도 몰라요. 참을 수 없어서 머리를 감았습니다. 삼푸를 눌
러짜서 거품을 내기 위해 팔에 힘을 주는 일이 조금 어렵게 느
껴졌어요. 머리카락이 빠져서 수챗구멍을 막았습니다. 그래요,
아무 데나 괄호를 쳐서는 안 되죠. 적당히 쳐야 해요. 괄호 쳐야
하는 것은, 가령 세계의 의미나 인생의 허무에 대한 과도한 망
상 같은 것. 내가 사실은 두 발이 변색된 인형이라거나 밤하늘
이 흰색 콘크리트 벽에 큰 빔 프로젝터로 쏜 그림자라거나 우
리 외할아버지가 어딘가에 살아 있어서 내 소식을 몰래 듣고
있을 거라는 생각. 그런 생각들은 머릿속의 구멍을 점점 크게
만듭니다. 딱지가 질 시간도 안 주고. 쥐약을 잘못 주워 먹고
죽어가는 고양잇과 생물처럼, 궤양이 생기고 마는 그것들의
위처럼, 경련을 잠시 일으키다 이내 가만히 있습니다. 쥐가
아닌 생물을 위해 쥐약을 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배가 너무 고
파서, 뭐든 입에 넣고 보는 선택이 우리를 슬퍼지게 만드는 거
겠지요.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빗금, 다음의 일 / 오은경 (1) | 2025.08.22 |
|---|---|
| 케이블카 / 손 미 (0) | 2025.08.21 |
| 꺾어온 뒷자석의 작약 / 서연우 (2) | 2025.08.19 |
| 오려내는 힘 / 김복희 (4) | 2025.08.07 |
| 파랑 / 황정현 (4) | 2025.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