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동양일보 신춘문예 2010

주선화 2010. 1. 8. 12:25

실을 잣는 어머니 / 성준

 

 

 내 어린 아침의 마루에서 실을 잣는 늙은 어머니.

 그녀의 낡은 집 처마 빈틈 사이엔 야윈 바람소리가 났고

 어머니는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바람 줄기를 물레로 감아올렸다.

 부활을 꿈꾸다 죽은 고치.

 그녀의 몸에선 그 고치 냄새가 빠질 줄 몰랐다.

 뜨겁게 삶아진 고치에선 비린향이 났지만

 천천히 물레가 돌때마다 바람 실이 꼬이며

 뽑아지는 실 줄기에선 언제나 바람향이 났다.

 늦둥이인 나는 동네 아이들의 놀림과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컸다.

 어머니는 울고 들어온 어린 나에게

 주름살만큼 많은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 쓰디쓴 이야기를 소화하기에 나는 아직 어렸고

 실 자락처럼 끊어질 듯 이어지는 목소리를

 나는 여린 뽕잎처럼 오물거리며 잠들곤 했다.

 그런 밤이면 나는 어린 꿈을 품고

 하나의 고치가 되어 부활을 꿈꾸며 실을 잣았다.

 그날도 그녀는 마루에 앉아 종일 물레를 돌렸고

 처마 밑 허공에 걸린 마른 옥수수 따위가

 마른 뽕잎 부스러기처럼 떠다니는 바람에

 누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어머니는 평범한 날에 나를 떠났고

 어린 나는 그런 날은 좀 더 특별하게 올 줄 알았다.

 어머니는 단단한 나무 관을 고치삼아 깊은 잠에 들었다.

 석양 무렵 마당에서 그녀의 옷자락을 태우자

 그녀에 일생의 고치가 흐릿한 연기로 피어올랐고

 연기는 짙은 밤하늘 천으로 올올이 흩어졌다.

 어른이 된 석양의 끝자락에서

 나는 차가운 밤의 천을 두르며 그리움의 고치를 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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