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육탁 (肉鐸)/ 배한봉

주선화 2011. 12. 16. 12:52

육탁(肉鐸) / 배한봉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

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

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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