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청동거울의 노래 / 이 영혜

주선화 2014. 12. 16. 14:30

청동거울의 노래 / 이영혜

 

나 얼마나 오래 잠들었었나요

폐허가 된 진흙더미 속에서도

내 안에 숨 쉬던 당신은 지워지지 않고

금 간 가슴팍엔 절망이 수수백번 얼었다 녹았지요

 

천 년만의 만남이었나요

안압지(雁鴨地)연등 아래서 만난 당신

무엇인가 생각날 듯 말 듯 한참을 응시하다가

그냥 뒷모습이 되어버린 당신

목쉰 외침 들리지 않던가요

 

전장으로 말 달려간 화랑의 말방울소리를 기다리며

달빛 아래 탑을 돌던 소녀를 잊으셨나요

순금 허리띠를 두르고 금관을 쓴

연회장의 왕을 몰래 흠모하며

연꽃 만발한 월지(月地) 누각에서

비파를 타던 진골 여인을 잊으셨나요

 

연잎에 맺힌 푸른 물방울 끌어안고

천 년을 기다렸건만

다음 조우는 또 몇 생이 걸릴지 기약도 없건만

거울 속엔 그리움의 녹만 가득하고

도무지 나는, 당신에게 닿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내 슬픈 눈빛이 천 년 왕조의 보석임을

천 년을 달려온 별빛임을 기억해주세요

영겁의 기다림이면 어때요

언젠가 돌아올 당신 편히 들어앉을 수 있도록

말갛게 거울 닦아놓고

나, 다시 그 안에 당신만을 위한 연꽃을 피우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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