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만나다 / 최금진
나는 노인 하나를 잡았다
공원에 혼자 앉아 있는 걸 붙들어왔다
뒤를 밟아 온 나무들은 더 이상의 추적을 포기했다
그는 모르는 게 없고, 안 가 본 곳이 없으므로
나는 노인의 딱딱한 등짝에 올라탔다
저기 팽팽 지칠 줄 모르고 돌아가는
당신의 칠십 세로 나를 안내하시오,
촛농처럼 아래로 흘러내린 뱃살을 나는 걷어찼다
아귀가 맞지 않는 뼈들이 후두둑
무너지는 소리가 내 안에서도 들렸다
이보게, 그렇게 서둘지 않아도......
나는 노인의 목에 맨 줄을 힘껏 당겼다
희망이 얼마나 지겨운지, 노인이
들고 있는 물그릇을 빼앗아 나는 밟아버렸다
노인이 불쌍하다는 생각은 나쁜 것이다
노인은 나무뿌리 같은 손가락을 펴서 땅을 짚은 채
엉금엉금 기기 시작했다
힐끗힐끗 바람 속을 떠다니는 청년들을 쳐다보았으나
아무도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
노인은 천천히 풍차를 향해 걸어갔다
텅 빈 양철 깡통 소리
뎅그렁뎅그렁, 밤 12시를 향하여
바람 부는 서쪽을 향하여
나는 노인을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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