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벙다리 / 주선화
앉아서 죽은 스님은 많아도 거꾸로 서서
죽은 스님은 없다는 말에
물구나무서서 죽은 등운동 선사는
"죽어서도 사람을 속이냐"
누이의 한마디에 시신을 단숨에 무너뜨려
다비식을 올렸듯
삶이 다 가짜라고
거꾸로 서면 헛것이 보인다고
아이와 아빠가
다리 난간 위에 올라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 난간을 움켜쥐고
아빠는 아이를 밀어뜨리고
자동 CCTV는 하늘길로 흐르고
아빠는 물길로 흐르고
구층암 모과나무는
전생에 푸른 모과를 주렁주렁 달고
하늘을 벗 삼아 새소리 노래 삼아
유유자적 즐거웠으리
현생엔 가지가 컴컴한 땅속으로 고개 박고
뿌리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서서
휘파람을 부르리
반 평도 안되는 사글셋방
만리향이 문틈으로 날아와
화려하게 수놓아
흔들거리는 팔 묶어둔 채
죽음도 사치스러운 것
수면제 몇 알 털어 넣고
융단처럼 깔아놓은 침상에 몸을 뉜,
버릴 것도 가져갈 것도 아무것도 없다
홀가분하다
달갱이
사랑하는 당신, 나를 찾지 말아요
물 맑은 감천 도랑가에 하염없이 앉아있어도
자비정사 툇마루에 걸터앉아
벚꽃잎 흩날리는 산길을 무심히 건너봐도
나는 거기 없어요, 현관 비밀번호를 찾아 누르고 들어와도
물어보지 말아요, 나는 거기 없어요
파타야 서쪽 7.5Km 떨어진 작은 섬,
속이 훤히 보이는 바다
그 바다에 달갱이가 있어요
꼬리를 흔들며 오색 무지개 빛깔 자랑하듯 날개 펼치며
바닷속을 걸어다니는 유별난 고기
슬픈땐 꼬꼬꼬 꼬꼬꼬
울기도 잘 우는 고기, 바닷속에 살지만
바닷고기라 할 수 없는, 푸른빛에 섞여
푸른 물 먹고 푸르게 산다면 재미없다며
빨주노초파남보 옷을 입고
허공을 툭툭 뛰어오르다가 사정없이 물속으로
곤두박질하는 당신
나는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어요
* 2015 시애 9호 발표
시애가 주목하는 오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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