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은 나쁘다 / 김륭
사람을 열불 나게 한다.
라면은 글쎄, 촌놈들 형편을 몰라도 너무 몰라.
올해도 「金치」라며?
히죽히죽 웃음 이파리 흔드는 현대아파트 A동 1029호 金봉섭씨는
손바닥만한 시골밭뙈기에 앉아 시퍼렇게 눈에 불을 켠
배추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서울 놈이다.
배추파동이니 무파동이니......
한해 걸러 밭떼기를 갈아엎는 아버지에게
라면은
음식이 아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사람이다.
일곱 남매도 모자라 바득바득 개돼지까지 먹여살린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찌든 가난도 오동통하게 삶아내셨지만
퍼질수록 양이 많아진다는 게 문제다.
집안을 말아먹고 나라마저 팔아먹은 놈이 틀림없다고
핏대 올리시는 아버지, 그러다가도 밥은 묵었나 하시는 당신
빚더미에 쌓아올린 우리 집 현대사를 부글부글 끓게 한다.
장독을 버린 김치가 냉장고 품에 안기자
할머니 돌아가셨고
일회용종이컵과 눈 맞은 라면이 뻥, 양은냄비 찌그러진 엉덩이 걷어차자
냉큼 날 버렸다. 아내는,
참 나쁘다. 장독을 버린 김치도 나쁘지만
김치냉장고에 안겨 껑충, 몸값을 올린
「金치」를 찾아
필시 짝짓기를 하는 라면은
정말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