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 있는 시

라면은 나쁘다 / 김륭

주선화 2016. 11. 19. 11:44

라면은 나쁘다 / 김륭


                    


사람을 열불 나게 한다.

라면은 글쎄, 촌놈들 형편을 몰라도 너무 몰라.


올해도 「金치」라며?

히죽히죽 웃음 이파리 흔드는 현대아파트 A동 1029호 金봉섭씨는

손바닥만한 시골밭뙈기에 앉아 시퍼렇게 눈에 불을 켠

배추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서울 놈이다.


배추파동이니 무파동이니......

한해 걸러 밭떼기를 갈아엎는 아버지에게

라면은

음식이 아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사람이다.


일곱 남매도 모자라 바득바득 개돼지까지 먹여살린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찌든 가난도 오동통하게 삶아내셨지만

퍼질수록 양이 많아진다는 게 문제다.

집안을 말아먹고 나라마저 팔아먹은 놈이 틀림없다고

핏대 올리시는 아버지, 그러다가도 밥은 묵었나 하시는 당신

빚더미에 쌓아올린 우리 집 현대사를 부글부글 끓게 한다.


장독을 버린 김치가 냉장고 품에 안기자

할머니 돌아가셨고

일회용종이컵과 눈 맞은 라면이 뻥, 양은냄비 찌그러진 엉덩이 걷어차자

냉큼 날 버렸다. 아내는,


참 나쁘다. 장독을 버린 김치도 나쁘지만

김치냉장고에 안겨 껑충, 몸값을 올린

「金치」를 찾아

필시 짝짓기를 하는 라면은

정말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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