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거울 / 양해기

주선화 2020. 5. 15. 16:33

거울 

ㅡ 양해기



철거를 기다리는 

빈집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거울이 있다


거울은


꽃들의 슬픈 표정을

보관하고 있다




시간의 틈



한동안 머물렀던 새의

체온과

울음과

어떤 망설임이

벚나무의 작은 이파리를 흔드는 동안


주위는 나와 함께

잠시 어두워져 있었다




공간과 시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울음들은


어떤 공통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그 공간에서 울려나오는 슬픔은

저마다

다른 시간도 가지고 있다




수초



물속에서

애써 공기방울을 매달던 

수초가


물 밖으로 나오면서

이번엔

물방울들을 데리고 나온다




4층 4학년 4반



모과나무가 교실 안을 들여다본다


방과 후 엷은 햇살이 비추는 교실

분필가루가 가라앉지 않고 떠돌며 놀고 있다


국화꽃이 놓여 있던 자리에

못생긴 모과가

붉게 익은 모과가 

햇빛에 달구어진 모과가


햇빛을 따라 교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빈집



겨울을 견딘

배나무들이 검게 타들어간 가지를 들어

자꾸 한곳을 가리키려 한다


강 건너 빈집

눈 녹은 물이 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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