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수련의 아침 / 배한봉

주선화 2020. 5. 25. 09:50

수련의 아침

ㅡ 배한봉

 

새가 날아오르자 저수지도 날아오른다

잠 들 깬 눈 비비던 늦봄 아침의 꽃봉오리도 함께 날아오른다

 

내가 내 삶의 한계와 결핍을 연민하는 사이

 

수련 꽃봉오리 안에는

신생의 박동 저편에서 밤새 써놓은 별의 노란 글자들이 유정란처럼 부풀고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대체로

약간의 독기로 인해 더 아름답다는

기막히게 진부한 슬픔의 영역도 없이

 

햇살의 손은 차고 끈적거리는 진흙 바닥에까지

공중의 시간을 푸르스름하게 풀어놓는다

 

진흙 바닥 같은 삶을 심장으로 가져본 자들은 안다,

수련 꽃봉오리가

지금 보여주려는 것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자신의 심장이라는 것을

 

새를 따라 날아오른 저수지가

갑자기 검고 야윈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예감처럼 푸르스름한 박동이 차츰 진흙 바닥 속의 내 뿌리까지 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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