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치(齒)

주선화 2020. 8. 31. 16:44
치 齒
ㅡ 이동욱


호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물줄기는 날카로워진다
연약함을 가장하지 않는다

다시 아침
어김없이 남자는 옥상에 올라
채소에 물을 준다 채소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있다 정확히
박스는 사각의 스티로폼, 하얗게
모여 있는 말이 위태롭다

옥상 아래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언제 깨어나 울지 모른다, 시커멓게
동굴 같은 입 가득 허기를 물고 남자에게 물을지 모른다
그건, 아직, 네가 알 수 없는 일
아내는 왜 나비를 좋아했을까

남자는 채소에 물을 준다
언젠가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자주 뽑히는 너희는 왜 이다지 순종적인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
어서 자라라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
남자는 호스를 움켜쥔다
우리는 무해한 짐승일까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처럼
담장 위로 박혀 있는 병조각이 햇빛과 첨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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