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빚 / 최동은 감상 / 곽재구

주선화 2021. 11. 14. 13:30

 

최동은

 

 

 

백일홍이 피었네요

이 백일홍은 언제 피었죠

백만 원을 빌린 마음처럼 요렇게 빨갛게

백일홍백일홍백만원백만원

그러니까 백만 원이 백일홍처럼 들리네요

 

빚은 한 번에 늘어난 게 아니죠

꽃이 피듯 서서히 피어나죠

이자도 처음부터 많아진 게 아니구요

 

백일홍 백 송이도 한꺼번에 피었다 지지 않죠

 

한 송이가 지면 한 송이가 오고

한 송이가 지면 또 한 송이가 오고

분홍색이 가면 하얀색이 오고 파란색이 가면 자주색이 오고

그 많은 백일홍이 잘못이 없듯 백만 원도 잘못이 없죠

 

그저 꽃잎을 몇 장 빌린 것뿐이죠

밤새워 백만 원을 세듯

한 잎 두 잎 세면 셀수록 피어나는 게 이자죠

그러니까 이자는 생각하지 마세요

저기 봐요

 

폭발하듯 꽃들이 피고 있잖아요

꽃망울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감상

 

ㅡ곽재구

 

마음이 아픕니다. 백일홍과 백만 원, 아무런 인연이 없을 것 같은데 둘은 한 시 속에 어울렸습니다. 삶과 빚은 동일한

의미입니다. 태어나는 순간 인간은 빚을 지게 되어 있지요. 뭐 하며 살지? 어떻게 살지? 어떤 삶이 의미 있지? 이 의문들은 빚에 다름 아닙니다. 빌 게이츠의 자녀로 태어난들 왜 빚이 없겠는지요. 많은 자산을 물려받았으니 어떻게 써야 하는지 큰 빚을 지니고 태어난 것입니다. 백일홍이 잘못이 없듯 빌린 백만 원도 잘못이 없습니다. 울지 마세요, 백일홍은 내년에도 피어요. 남행길에 연락주시면 매생이 굴국밥 한 그릇 대접하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