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무화과가 익어가는 순간 / 조용미 감상/ 이효림

주선화 2021. 11. 22. 10:24

무화가 익어가는 순간

 

ㅡ조용미

 

 

비가 큰 새처럼 날아다닌다

큰 새의 깃털들이

옆으로, 위로 흩어지고 있다

 

바람은 비를 데리고 옆으로, 옆으로

 

많은 먹구름이 지나갔다

더 많은 바람이 지나갔다 비는 다시

돌아왔다

 

그 자리다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시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고마나루 삵의 발자국은 발톱을 오므리고 걷는다

 

초록이 바람을 끌고 날뛰고 있다

 

태풍이 위서처럼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나는 큰 새의 그림자를 덮고 있다

 

 

감상

 

ㅡ이효림

 

 

"고마나루 삵의 발자국은 발톱을 오므리고 걷는다" 꽃이 갔습니다. 여름은 꽃을 보내고 심하게 앓습니다. 변모 변경의 계절이 여름입니다. 꽃을 잃은 절망과 새로운 삶의 희망을 동시에 갖는 시기입니다 "비가 큰 새처럼 날아다닌다" 고 "바람은 비를 데리고, 옆으로, 옆으로" 심지어 "많은 먹구름이 지나갔다/ 더 많은 바람이 지나갔다"는 황폐한 순간을 드러냅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가 마음을 훑고 지나갑니다. 지난 계절의 새싹들에게 깊은 시련을 주고 더러는 희망을 꺾어 버리기도 하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시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이처럼 시의 이중적 장치는 글의 깊이와 울림을 크게 하여 독자의 감정을 흔들리게 합니다. 발톱을 오므리고 걸어야 하고  마음을 접고 오히려 그림자를 덮어 마주 서야 할 시간 일지도 모릅니다. "초록이 바람을 끌고 날뛰고 있다/ 태풍이 위서처럼/어지러이 날아다닌다"는 참혹의 순간이 화자만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태풍의 순간에도 "무화과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고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놓지 말기를 간절히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