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파도의 기분 / 임수현 감상 / 허연

주선화 2021. 11. 13. 13:44

파도의 기분

 

ㅡ임수현

 

 

바다에서는

누구나 웅크리는 법을 알게 된다

 

고기잡이 배들이 해안선을 그렸다가 지운다

해변에 오면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들 준비가 되어 있다 벗어 둔 신발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신발을 생각하지 않는다

 

수평선은 수평선에게

파도는 파도의 기분으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밀려가고 있었다

 

모래처럼 부서진 기분을 뭉쳐 파도에게 주었다

웅크린 몸을 펴

벗어 둔 신발을 집어 들면

맞잡은 두 손에는 계절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대로 괜찮다

바다에서 돌아와 바짓단을 펴면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

파도가 내게 모래를 한 움큼 넣어 주었다

 

 

 

 

감상

 

ㅡ허연

 

 

바닷가에서 파도를 마주하면 나는 작아진다. 거대하고 유장한 파도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된다. 파도가 밀려오면 내 마음은 밀려나고, 파도가 밀려가면 내 마음은 다시 파도를 따라간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파도의 기분이 나의 기분이 된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보면 파도가 내 바짓단에 추억 한 움큼을 넣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파도 앞에 서면 나는 작아진다. 하지만 시인의 말대로 '그런대로 괜찮다'. 바다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