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기분
ㅡ임수현
바다에서는
누구나 웅크리는 법을 알게 된다
고기잡이 배들이 해안선을 그렸다가 지운다
해변에 오면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들 준비가 되어 있다 벗어 둔 신발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신발을 생각하지 않는다
수평선은 수평선에게
파도는 파도의 기분으로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밀려가고 있었다
모래처럼 부서진 기분을 뭉쳐 파도에게 주었다
웅크린 몸을 펴
벗어 둔 신발을 집어 들면
맞잡은 두 손에는 계절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대로 괜찮다
바다에서 돌아와 바짓단을 펴면
아는 낱말의 수만큼 밤이 되겠지
파도가 내게 모래를 한 움큼 넣어 주었다
감상
ㅡ허연
바닷가에서 파도를 마주하면 나는 작아진다. 거대하고 유장한 파도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존재가 된다. 파도가 밀려오면 내 마음은 밀려나고, 파도가 밀려가면 내 마음은 다시 파도를 따라간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파도의 기분이 나의 기분이 된다. 그러고 집에 돌아와 보면 파도가 내 바짓단에 추억 한 움큼을 넣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파도 앞에 서면 나는 작아진다. 하지만 시인의 말대로 '그런대로 괜찮다'. 바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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