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낙타에 대한
ㅡ김미옥
햇살을 등에 꽂고 낙타가 걷는다
무심한 혀로 콧구멍을 핥는다
나는 편안히 앉아 익숙한 비애를 본다
와이드 화면 속 모래바람은
회오리 치고
열 받은 팝콘은 지리멸렬 터진다
낙타는 우스꽝스럽게 울지만
눈물을 저장해 놓고 가볍게 씹는 법을 안다
단내가 화면 밖으로 품어 나온다
지긋이 눈 뜬 낙타의 검은 망막에는
아무것도 읽을 수 없다
뜨거운 혹 만년을 이고 다녀도
긴 눈썹 한 번 깜빡이면 화면이 바뀐다
마른 오아시스에는 오늘도
불굴을 되새김질하는
흔한 낙타가 있다.
감상
ㅡ허연 (시인)
여행지에서 낙타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너무나 예뻤고 너무나 슬펐다. 사막에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수천만 년 된 슬픔이었다. 낙타는 무슨 고행의 동물처럼 느껴진다. 모래바람 속에서 모
든 걸 참아내며 생을 이행하는 낙타. 낙타는 숙연하다.
이 시는 TV 화면의 낙타를 보면서 쓴 시가. '눈물을 저장해 놓고 가볍게 씹는 법을 안다'는 대목
에서 무릎을 쳤다. 시인의 말처럼 낙타의 모습에는 '익숙한 비애'가 담겨 있다. 우리 인생의 단면
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낙타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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