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그들 / 오은 감상 / 전해수

주선화 2021. 12. 30. 15:15

그들

 

ㅡ오은

 

 

사람처럼 말하네 꼭 사람 같네

그건 욕이었다

 

사람만큼 아름답네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네

그건 신기루였다

 

사람인 줄 알았네 10년 감수했네

그건 진심이었다

 

사람이어서 다행이고

사람이 아니어서 더 다행한

 

첫차는 어제치 피곤을 싣고 들어오고

막차는 오늘치 피곤을 나르듯 떠난다

 

 

 

감상

 

ㅡ전해수(문학평론가)

 

 

  오은의 시 「그들」은 삶의 무게로 눌린 "사람"의 존재를 더듬는다. "사람"처럼 말하니 꼭 사람 같으나 "사람"처럼 살긴 틀렸다는 존재를 향한 시원(始原)과 함께 규정된 메시지가 가볍지 않다. 오은의 시에서 희생의 대상은 "사람"에 있다. 그러나 "사람"이어서 다행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 아니어서 더 다행한 세계의 곡절에 우리의 판단은 유보된다. 다만 "욕"과 "신기루"와 "진심" 사이에서 다행한 "사람"의 일은 무엇인가. 그것이 있기나 한가.

  시인은 '피로감'을 표출한다. 첫차부터 막차까지 온전히 살아 내는 "사람"의 하루는 피곤을 저당잡고 있다. 사람처럼 말하는 "욕"됨과, 사람을 아름답다고 믿는 "신기루"와. 사람이 아니라는"진심"은, 어제와 오늘을 잇는 '피로감'의 원천이 된다. 시인은 "사람이어서 다행이고 / 사람이 아니어서 더 다행"하게 바라보는, 제 3자로 "그들"로 인식된, 다수의 대중에게, 정체성의 의문을 담금질한다. 사람이 모인 세계에 욕과 신기루와 진심을 뒤섞는다. "그들"로 통칭된 "사람"의 세계를 도저한 삶의 패러독스(역설)로 뭉긴다.

  오은 시인에게 세계는 '사람'을 향한 '피로감'으로 물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