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월간 벌레 / 김륭

주선화 2022. 2. 5. 10:42

월간 벌레

 

ㅡ김륭

 

 

나는 집이

없다 괜찮다, 없는 것도 있어야지

나를 슬금슬금 피하던 집은 갈수록 멀어진다

 

궁궐 같은 집을 물려받았더라도 나는

팔아 버렸을 것이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집을 사면

처마 밑에 새끼부터 몇 마리 들여놓겠다던 아버지 앞에

숟가락도 놓지 않았을 것이다

 

집에 가자, 도망가는 바람의 다리몽둥이라도 분질러

데려올 수 있는 그런 집이 아니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나는 왕릉왕릉, 릉, 릉, 밀고 다니는 사람

쇠똥을 굴리는 말똥구리처럼 집 없는 설움이란 말을 굴리면

지구보다 둥글고 큰 집이 나오고 한심해 죽겠다는 듯

나를 구경하는 벌레들이 보인다

 

아빠, 아빤 그 나이에 집도 없이 뭐 했어?

 

끝까지 들키면 안 된다 하나뿐인 딸아이마저 벌레가 될테니까

죽은 듯 누워 있던 엄마가 그래야지, 하고

또, 끓는다

 

코로나19로 출입이 통제된 요양병원, 당신은 나를

마치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생명체인 양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득

 

이젠 정말 사람을 돌려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다시는 당신이 돌아올 수 없는 집

벌레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는 집, 없어서 참 좋은

집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나는 

한 사람을 또 한 사람을 꾹

눌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