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정의 / 이재훈 감상 / 김정수(시인)

주선화 2022. 2. 21. 10:30

정의

 

 

ㅡ이재훈

 

 

  수풀에 있었다. 가잘 낮은 곳에서 숱한 위험을 만났다. 혐오스러웠고 추했다. 돈과 권세가 있으면 죄가 없단다. 늘 죄인으로 살아야 하는 수풀. 악인들의 말로에 대해. 저 높은 단상의 말로에 대해 어지러운 소문들만 들어야 한다. 수풀은 파괴되지 않는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더러운 짐승이 된다. 수풀 속에서 다리를 감싸안고 울었다. 풀잎들이 흔들렸다. 풀잎에 빗방울이 간신히 붙어 있다. 빗방울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흘러내려 사라졌다. 새로운 빗방울이 또 고인다.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이 질긴 운명. 피를 머금고 있는 빗방울. 수풀에 있었다. 아침햇살까지 야속한 수풀에 있었다. 금방 고이다 사라지는 수풀에 있었다. 거짓말이 수풀에 가득했다.

 

 

 

감상

 

ㅡ김정수(시인)

 

 

  100m 달리기 시합을 하는데 출발선상에 육상선수, 노인, 환자, 어린아이 등이 서 있다고 가정해보자. 특별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는 한 당연히 선수가 1등을 할 것이다. 같은 거리를 동등하게 뛰는 기회와 경쟁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시합은 정의롭지 못하다. 형식적 기회균등과 경쟁일 뿐이다. 실질적인 공정경쟁을 하려면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핸디캡을 줘야 한다. 약자를 배려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경쟁은 정의로운가.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났다면 평생 "숱한 위험"을 겪어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딛고 탈출한 사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다. 차별과 혐오를 견디며 "죄인처럼", "더러운 짐승"처럼 살아야 한다. 반면 "돈과 권세가 있으면 죄가 없"다. 대물림되는 가난은 사회적 불합리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치부된다. "저 높은 단상의 말로"에선 독재자의 향기가 난다. 정치적 독재만 독재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심판은 공정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