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ㅡ심재휘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창밖은 봄볕이 묽도록 맑고
그 속으로 피어오르는 삼월처럼 흔들리며
가물거리며 멀어지는 젊음에 대고
아니다 아니다 후회했다
매일이 보람차다면
힘겨워 살 수 있나
행복도 무거워질 때 있으니
맹물 마시듯
의미 없는 날도 있어야지
잘 살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있어야지
감상
ㅡ김정수(시인)
"힘내세요!" 전에는 힘들어하는 사람을 보면 위로하며 건네던 말이지만 힘내라는 말보다 힘을 달라는 반응 이후엔 꺼리게 됐다. 때로 한마디 말이 많은 위로가 되지만 절박한, 특히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심을 담은 말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상황이나 마음에 따라 왜곡될 수 있다. 시인은 외출하는 아들에게 무심코 "보람찬 하루" 라는 말을 건네곤 후회한다. 하루하루가 "보람차다면" 오히려 힘겨울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선한 말도 상처가 된다. 특히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젊음'이라면 더 그러하다. 의미 있는 날도 소중하지만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치열한 경쟁과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멍 때리는' 것 같은, 맹물 같은 날도 필요하다. 하루하루가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라면 그 행복의 무게를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남들보다 느리게 소박하게 살면 어떤가. "봄볕이 묽도록 맑"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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