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ㅡ이윤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
널 떠나기로 했다 오버
엔진이 툴툴거리는 비행기라도
불시착하는 곳이 너만 아니면 된다 오버
열대 야자수잎이 스치고 바나나 투성일 거다 오버
행복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오버
죽이 끓고 변죽이 울고 이랬다 저랬다 좀 닥치고 싶다 오버
원숭이 손을 잡고 머리 위 날아가는 새를 벗 삼아
이구아나처럼 엉금엉금이라도 갈 거다 오버
왜 그렇게 쥐었다 폈다 꼬깃꼬깃해지도록 사랑했을까 오버
사랑해서 주름이 돼버린 얼굴을 버리지 못했을까 오버
엔꼬다 오버
삶은 새로운 내용을 원하였으나
형식 밖에는 선회할 수 없었으니
떨어지는 나의 자세가 뱅글뱅글 홀씨 같았으면 좋겠다 오버
그때 네가 태양 같은 어금니가 반짝 눈부시도록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오버
지구는 속눈썹으로부터 흔들리는 풍경으로부터
추억을 모아주고 있지만
태어나 참 피곤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려 다오 오버
내 손에 쥔 이 편지를 부치지 마라 오버
희망이 없어서 개운한 얼굴일 거다 오버
코도 안 골 거다 오버
눅눅해지는 늑골도 안녕이다 오버
미안해 말아라 오버
오버다 오버
감상
ㅡ정채원(시인)
이윤설의 시 「오버」에서 슬픔은 전혀 우중충하지 않고 절망도 활어처럼 싱싱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으로 시는 독자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이승에서 시인으로 살며 '엔꼬'가 되도록 괴로웠던 그녀를 나의 이 짧은 글로나마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엔꼬'가 되도록 나는 누구를(무엇을) 사랑한 적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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