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

술적심 / 오탁번

주선화 2022. 5. 14. 11:13

술적심

 

ㅡ오탁번

 

 

혼자 아침을 먹는데

국어교사를 하는 옛 제자한테서

오랜만에 전화가 온다

술적심 없이

쥐코밥상으로 아침 때운다며

엄살을 떠니까

어마나, 아침부터 술 생각나느냐고

호호 웃는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마른입을 쩝쩝 다신다

술적심은 술이 아니라

숟가락을 적실 국이나 찌개 같은

국물 있는 음식이야!

또박또박 가르쳐 줬는데도

또, 어마나, 호호 웃는다

 

이놈 넌 F다!

 

 

사람 사는 일 다 이러루하니

 

 

윤여정이 오스카상을 받고

인터뷰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연기할 뿐

상 받았다고 윤여정이 김여정 되나요?

기자가 손들고 일어서려고 하니까

-그냥 앉아요 내가 대통령도 아닌데 뭘!

호호 웃으며 화이트 와인 홀짝!

 

티브이 보면서

윤여정에게 완전 넘어갔다

눈썹까지 살살 간질이는

말의 숨결을 보면

윤여정이야말로 진짜 시인이다

내 처보다 한 살 위 1947년생이라니

움처형으로나 삼아

와인 잔 쟁그랑 맞대면서

이 풍진 세상 허허 웃어 볼까나

사람 사는 일 다 이러루하니

 

 

비백飛白

 

 

콩을 심으며 논길 가는

노인의 머리 위로

백로 두어 마리

하늘 자락 시치며 날아간다

 

깐깐오월

모내는 날

일손 놓은 노인의 발걸음

호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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