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고양이야
ㅡ김필아
고양이 눈은 커서야. 나는 고양이 눈으로 시를 써.
세로로 열린 눈, 고양이는 빛을 핥고 있어. 하얀 낮
달처럼 어깨 위에 앉아 빛을 핥고 있어. 사냥하듯
눈동자에 맺힌 커서가 깜박깜박, 깜박여. 등은 휘
어지고 꼬리는 우아해. 그러나 커서가 들어가는
길목은 고양이 이마만큼이나 좁아.
골목에서 꺾이는 차량처럼 깜박 깜박여. 깜박이는
문자는 사각 안에 있어. 호흡하듯 깜박. 숨이 멎으
면 터질지도 모르는 깜박. 링거액이 떨어지듯 깜
박. 혈관을 타고 들어가듯 깜박. 고양이 동공이 커
지고 있어. 아니 열리고 있어. 이야기가 수챗구멍
으로 빨려들어 가. 무슨 문자라도 쳐야 해. 내 모니
터 속에서 마구 자작나무가 자라날 것 같아. 자작
나무숲 속에 토끼 눈이 깜박깜박. 늑대가 따라올
것 같은 깜짝. 아직 모르는 문자들 초인종 울리듯
깜박. 자동차 미등처럼 붉게 깜박깜박.
이 봐, 달은 점점 사라지는 웃음을 가졌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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