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아무튼, 고양이야 / 김필아

주선화 2022. 5. 20. 10:47

아무튼 고양이야

 

ㅡ김필아

 

 

고양이 눈은 커서야. 나는 고양이 눈으로 시를 써.

세로로 열린 눈, 고양이는 빛을 핥고 있어. 하얀 낮

달처럼 어깨 위에 앉아 빛을 핥고 있어. 사냥하듯

눈동자에 맺힌 커서가 깜박깜박, 깜박여. 등은 휘

어지고 꼬리는 우아해. 그러나 커서가 들어가는

길목은 고양이 이마만큼이나 좁아.

골목에서 꺾이는 차량처럼 깜박 깜박여. 깜박이는

문자는 사각 안에 있어. 호흡하듯 깜박. 숨이 멎으

면 터질지도 모르는 깜박. 링거액이 떨어지듯 깜

박. 혈관을 타고 들어가듯 깜박. 고양이 동공이 커

지고 있어. 아니 열리고 있어. 이야기가 수챗구멍

으로 빨려들어 가. 무슨 문자라도 쳐야 해. 내 모니

터 속에서 마구 자작나무가 자라날 것 같아. 자작

나무숲 속에 토끼 눈이 깜박깜박. 늑대가 따라올

것 같은 깜짝. 아직 모르는 문자들 초인종 울리듯

깜박. 자동차 미등처럼 붉게 깜박깜박.

이 봐, 달은 점점 사라지는 웃음을 가졌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