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 / 안희연

주선화 2022. 5. 16. 13:11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

 

ㅡ안희연

 

 

염색공은 골몰한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어떤 색을 입힐 것인가

고심의 고심을 거듭하던 그가

얼결에 페인트 통을 엎질렀을 때

우리는 태어났다

 

우리는 그의 아름다운 실수

돌이킬 수 없는 얼룩들

당신이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툭 하면 허물어지는 성벽을 가진 것은

그 때문

 

내정된 실패의 세계 속에 우리는 있다

플라스틱 병정들처럼

하루치의 슬픔을 배당 받고

걷고 또 걸어 제자리로 돌아온다

 

우리는 그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풀리지 않는 숙제

아무도 내일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에겐 노래할 입이 있고

문을 그릴 수 있는 손이 있다

 

절벽이라고 한다면 갇혀 있다

언덕이라고 했기에 흐르는 것

 

먼 훗날 염색공은 

우리를 떠올릴 것이다

우연히 그의 머릿속 전구가 켜지는 순간

 

그는 휴지통을 뒤적여 오래된 실패를 꺼낼 것이다

스스로 번져가던 무늬들

빛에 머금은 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