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
ㅡ안희연
염색공은 골몰한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어떤 색을 입힐 것인가
고심의 고심을 거듭하던 그가
얼결에 페인트 통을 엎질렀을 때
우리는 태어났다
우리는 그의 아름다운 실수
돌이킬 수 없는 얼룩들
당신이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툭 하면 허물어지는 성벽을 가진 것은
그 때문
내정된 실패의 세계 속에 우리는 있다
플라스틱 병정들처럼
하루치의 슬픔을 배당 받고
걷고 또 걸어 제자리로 돌아온다
우리는 그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풀리지 않는 숙제
아무도 내일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에겐 노래할 입이 있고
문을 그릴 수 있는 손이 있다
절벽이라고 한다면 갇혀 있다
언덕이라고 했기에 흐르는 것
먼 훗날 염색공은
우리를 떠올릴 것이다
우연히 그의 머릿속 전구가 켜지는 순간
그는 휴지통을 뒤적여 오래된 실패를 꺼낼 것이다
스스로 번져가던 무늬들
빛에 머금은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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