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손가락의 시
ㅡ진은영
시를 쓰는 건
내 손가락을 쓰는 일이 머리를 쓰는 일보다
중요하기 때문, 내 손가락,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뻗어 나와 있다. 나무를 봐, 몸통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가지처럼, 나는 건드린다, 고요한 밤의 숨결,
흘러가는 물소리를, 불타는 다른 나무의 뜨거움을,
모두 다른 것을 가리킨다. 방향을 틀어 제 몸에
대는 것은 가지가 아니다.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가장 여리다. 잘 부러진다. 가지는 물을
빨아들이지도 못하고 나무를 지탱하지도 않는다.
빗방울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쓴다. 내게서 제일
멀리 나와 있다. 손가락 끝에서 시간의 잎들이
피어난다.
'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거소녀 삐삐 / 최정란 (0) | 2022.05.31 |
---|---|
도둑 고양이 / 백윤석 (0) | 2022.05.30 |
아무튼, 고양이야 / 김필아 (0) | 2022.05.20 |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 / 안희연 (0) | 2022.05.16 |
조로아스터교식 화장 / 고주희 (0) | 2022.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