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ㅡ박상천
당신은 간혹 도마며 반찬 그릇을
창가에 널어 말렸지요.
플라스틱 도만데, 세제로 빡빡 씻으면 됐지,
뭐, 햇볕에 말리기까지야···
널어놓은 것들을 보며 난 그렇게 생각했지요.
어느 날, 김치를 썰었던 도마를 아무리 씻어도
그 흔적이 남아 깨끗해지지 않았어요.
문득 당신이 하던 일이 생각나서
도마를 창가에 두고 햇볕에 반나절을 말렸지요.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도마에 배어있던 김칫국물의 색깔이 바래는 거였어요.
김치 그릇에선 냄새도 가셨어요.
아, 다시 하얗게 돌아온 도마를 보며,
냄새가 가신 그릇을 보며
세제가 할 수 있는 일과
햇볕이 할 수 있는 일이 다르다는 걸 알았지요.
당신 없는 집안에서
난 그저 세제의 역할밖엔 할 수가 없어요.
햇볕을 쬐지 못한 집안 이곳저곳엔
계속해서 얼룩이 남아 있네요.
딸의 마음이나 나의 마음 속,
얼룩이 가시지 않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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