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산책 (제 10회 최치원신인문학상 당선작 중 1편)
ㅡ지관순
산딸나무 꽃이 접히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 양산을 펴지 않았고
파란 하늘이 묽어질까봐
수돗물을 세게 틀지 않았다
보도블록의 금을 밝으면 어젯밤 꿈이 출렁 중앙선을
툭툭 치며 걸었다
까치발을 해도 까치는 나를 모른 척해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나에게 안녕?
내 목덜미가
햇빛 잘 드는 창이 될 수 있다며
개미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바람은 구름보다 늦게 출발했으나
내 입 속을 경유해도 되는지 묻지 않았다
혀가 마를 시간이 필요했다
검정색 페인트 냄새가 시간을 불러 모았다
다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이
어둠의 실금으로 몰려가 쭈뼛 서고
젤리로 만든 그늘은 자꾸 벽에서 흘러내렸다
물고기가 뜬 눈으로 뒤척이는 동안
나는 하나의 이름도 무거워
산딸나무 꽃 귀마개를 샀다
모든 감정을 침대에 넣고 잠갔다
거미줄에 걸린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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