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그리움의 불씨 꺼내 점등을 하다 / 조은설

주선화 2022. 7. 19. 10:22

그리움의 불씨 꺼내 점등을 하다

 

-조은설

 

 

짧은 가을 해가 덧문을 걸어요

올해는 고추 당초 매울 거라는 거우살이

한 무리의 철새들이

정든 도래지를 떠나려 해요

 

품속 깊이 묻어둔

그리움의 불씨 꺼내 점등을 하고

바람의 갈기엔 

두 날개를 꼭꼭 비끄러매지요

 

한 바퀴 호수를 돌며 나이테를 감은 후

젖은 눈으로 인사를 하지만

잠시 다녀올 길, 아무도 떠난다 말하지 않아요

 

새벽이 오면

차렵이불 꺼내 덮어주던 물안개,

잘 익은 노을의 쇄골이 얼비치던

까만 눈동자들은

수만 킬로 여행길의 연료가 될 거예요

 

머릿속에 그려둔 지도, 그 검은 입속으로

풍덩 풍덩

뛰어드는 철새들

 

한 옥타브 목울대 끌어올릘 때마다 쏟아지는

비릿한 갯내음들

물소리들

등푸른 날갯죽지 힘껏 밀어 올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