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오렌지 중에서 구름의 지분 / 임재정

주선화 2023. 2. 22. 10:18

오렌지 중에서 구름의 지분

 

-임재정

 

 

자전하는 지구보다

오늘은 뚱뚱한 구름이 더 빠르다

 

저장한 빗소리를 꺼내 주르륵, 상대의 심장으로 흘러들 수도 있다

 

온몸을 반대로 기울여야 중력을 떨쳐 내는 물동이처럼 

가파른 계단에서 엎지른 무릎처럼

눈물이 붉은 토마토처럼

 

주근깨 소녀는 후다닥 내 심장에서 놀라 달아나고

 

정오 못 미쳐 자전거를 탄 연인들 뒤를

욱신대는 소나기가 뒤따라 뛰어간다

나무 아래 남자 옷섶을 파고 든 아이를 여자가 감싼다

 

손바닥 들뜬 굳은살의 암시처럼, 비는 왜 헛손질만 같을까 얼룩말처럼 중의적일까

 

밥집 골목, 웅덩이가 가득 비의 종종걸음들

넥타이에 묶인 한 무리의 구름

그러나 식당엔 찌개가 끓고 식 ㅡ식 ㅡ 에어컨이 입김을 내뿜고

 

소나기는 아이스크림처럼 금세 막대와 얼룩으로 바뀐다

 

건널목에 몰린 이들이 일제히 한곳을 올려다볼 때 무지개는 커다란 창문이 되기도 한다네

 

가로수 잎에 맺힌 물방울 속으로 버스가 들어간다

 

갸우뚱하는 푸른 지구본의 경도를 따라

막 나온 햇살이 칼날을 밀어 넣는다

 

지구는 둥그니까

어디선가 오렌지는 익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