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에서 만나다
-주선화
바다를 호령하려 먼바다로 가신 아버지
함안 오일장에서 뵙습니다.
좌판에 앉아 싱싱한 활어가 아닌
마지막 남은 무 두 개 떨이하라 붙듭니다.
생전의 아버지 만난 듯
너무도 반가워서 두 손이라도 덥석 잡고 싶었습니다.
무가 많이 있었지만 무겁고 버거운 무
두 손 가득 웃음 머금고 모셔 왔습니다.
무 속에 담긴 물빛 들여다보면 행복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리통만 한 무 앞에 두고
마냥, 먹먹해져
그냥, 잠잠해져
한참을 앉았다가
푸른 무청 하나씩 떼어내고 잘랐습니다.
태풍과 장마, 타들어 가는 여름 볕
가슴에 커다란 심이 박힌,
흰빛입니다.
물기 잔뜩 머금고 또르르 구르는 무 한 조각
별사탕인 양 입 안에 넣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달콤한 맛
자신의 바다에서도 단 한 번도 활어가 되어 본 적이 없는,
아버지 두 손에 안은 무방한 날이었습니다.
* 2023년 경남문학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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