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보기
-이장욱
깊은 어둠 속에는 무언가가 모자란다.
혹동고래 같은 것이
베네수엘라의 외로움 같은 것이
나도 모르게 세포분열을 하거나
결승에서 자책골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이 침울한 영혼에 가깝다고
삶에 가장 가까운 어둠이란
엑스트라 배우가 카메라 조명을 벗어나
무심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진단을 받고 치료를 포기하고 혼자 깨어나
천장을 바라보는 새벽
어둠이란 지도 위의 한 점이 아니다.
수평선이 아니다.
죽은 뒤도 아니다.
단지 한 사람이 사라진 세계에 가까운
우리는 결국 시제가 없는 편지를 쓰는 것이다.
여행자란 결국 돌아오는 사람인가?
나는 당신의 조금 더 먼 곳에 도착함
이제 돌아가지 못함
과 같은 문제로
베네수엘라에 가보지 못했는데도
새벽의 어둠 속에는 여행자들이 떠돌고 있다.
혹동고래가 배를 보인 채 떠오르는 순간에
외로운 심판은 종료 휘슬을 길게 울리고
나는 어둠을 끄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문득 멈추어 서서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후보 선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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