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콜
-숙희
우리 호텔의 투숙객 여러분께.
오늘밤 오로라가 나타나면 깨워드릴게요.
- 당신의 Q.
무엇을 알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선잠에 들었다 깰 때
가져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때
밤이 긴 곳에서 불면이 이어질 때
실패하기 위한 실패도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불 위에서 변기 위에서 초조할 때
핀란드나 아이슬란드나
먼 극지의 호텔에서 한밤중 손님을 깨워준다는
오로라 콜을
내 방에서 기다리지
정말 그러면
나도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고
빛의 휘장을 따라
달리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느새 새벽 거리의 청소노동자와
음주운전자가 같이 깨어 있는 시간
그 뒤에서
홀로 눈물 흘리게 될지도 모르지
누군가 죽을 것만 같아서
더 나쁜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밤이 충분히 캄캄하지 않아
빛나는 건 사실 인공위성이래
누군가 말해줬던 기억이 나
물어보지 않았는데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대답이 많아지고
한참 예전엔
가로등이 없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너랑 있기도 했고
너희들이랑 있기도 했지
그러면 무서운 게 너무 많아도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기분이었지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불이 번질 거 같으면
도망을 가
보란 듯이 키스를 한 적도 있어
눈을 떠보면 낯선 얼굴이 되어 있고
각목이란 각목은 다 부러뜨리고 달아나
붉은 꽃을 꺾으면서도
피가 번져야 장미를 확신했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의 연속에서
나는 깨어 있었어
그리고 어느 날엔 그것을 본 것도 같지
빛
그러니까 춤추는 빛
거짓말
전화벨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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