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오로라 콜 / 숙희

주선화 2024. 8. 6. 15:50

오로라 콜

 

-숙희

 

 

                 우리 호텔의 투숙객 여러분께.

오늘밤 오로라가 나타나면 깨워드릴게요.

                                               - 당신의 Q.

 

무엇을 알기 위해서 무엇이 되기 위해서

선잠에 들었다 깰 때

가져보지 못한 것을 그리워할 때

밤이 긴 곳에서 불면이 이어질 때

실패하기 위한 실패도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이불 위에서 변기 위에서 초조할 때

 

핀란드나 아이슬란드나

먼 극지의 호텔에서 한밤중 손님을 깨워준다는

오로라 콜을

내 방에서 기다리지

 

정말 그러면

나도 그것을 볼 수 있을 것 같고

빛의 휘장을 따라

달리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느새 새벽 거리의 청소노동자와

음주운전자가 같이 깨어 있는 시간

 

그 뒤에서

홀로 눈물 흘리게 될지도 모르지

누군가 죽을 것만 같아서

더 나쁜 사람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밤이 충분히 캄캄하지 않아

 

빛나는 건 사실 인공위성이래

누군가 말해줬던 기억이 나

물어보지 않았는데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대답이 많아지고

 

한참 예전엔

가로등이 없는 곳을

찾아다녔는데

 

너랑 있기도 했고

너희들이랑 있기도 했지

 

그러면 무서운 게 너무 많아도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기분이었지

 

드럼통에 불을 피우고

불이 번질 거 같으면

도망을 가

보란 듯이 키스를 한 적도 있어

눈을 떠보면 낯선 얼굴이 되어 있고

각목이란 각목은 다 부러뜨리고 달아나

붉은 꽃을 꺾으면서도

피가 번져야 장미를 확신했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의 연속에서

나는 깨어 있었어

 

그리고 어느 날엔 그것을 본 것도 같지

그러니까 춤추는 빛

 

거짓말

전화벨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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