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절리에 앉은 새떼들
-이순옥
새들에게 절벽은 피난처이다
멀리 바라보는 습성의 새들은
날개를 펴지 않고도 멀리 볼 수 있다
모두 잊었다
잡초 무성하던 밭고랑도 쑥굴헝도
주상절리 위에서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가늠하지 않는다
바다는 그저 넓고 아득한 그리움일 뿐
절벽을 기어오르며 살다가 바람처럼 스러지는 것이 생이라는데
주상절리 깎아지른 절벽에는 지금도 수많은 바닷새들이 집을 짓
고 새끼를 기르고 먼 대양으로부터 달려온 파도가 잠시 머물다
스러진다 가파른 하루하루 오르내리며 사는 목숨들이 모여들어
숨 돌리고 있다 올려다보는 생은 언제나 절벽이다 내려다보는
생은 낭떠러지다 눈부신 생이란 반짝반짝 수평선 위에 떠가는
한닢 조각배일 뿐
주상절리 위에서는 바람의 비명이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절벽도 익숙한 일이라 물거품도 익숙한 일이라
매일 태어나 매일 붉게 타 죽는 노을에 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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