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오징어입 버터구이 / 고명재

주선화 2024. 8. 5. 17:16

오징어입 버터구이

 

-고명재

 

 

어떤 종류의 입맞춤이 탄생합니까

키스는 어디까지 가능합니까

강아지의 주둥이에 입을 맞출 때

확 벌어진 목련의 중심에 코를 박을 때

뽀뽀입니까 키스입니까 꿀벌입니까

오늘은 꽃다발을 들고 너에게 달려가는 날

 

졸업할 때 왜 꽃다발을 주는지 아세요?

우선 꽃집에서 풍성한 다발을 삽시다

까치발을 들고 한번 걸어보셔요

아무리 살살 걸어도 폭발입니다

꽃들끼리 정신없이 키스합니다

 

다발은 그런 것 터널 끝의 공동체처럼

키스를 퍼붓다 통하는 뚫어뻥 부황 같은 것

학사모를 하늘로 던지고 강아지를 껴안고

강아지를 하늘로 던지고 꽃다발을 껴안고

힘껏 뛰면 머리칼이 펼쳐집니다

우리는 사실 존재의 폭죽입니다

 

지금 막 맥주잔을 들이켜는데

잠깐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도 키스

키스도 키스 진로眞露도 키스 머릿속에서

드넓게 펼쳐져 스치는 금빛 맥전麥田도 키스

메마른 목에 장작을 가르며 소리칩니다

캬 좋다 보리에 탄산이 맺혀 있다니!

 

입과 입이 우르르 쌓인 접시를 보면서

둥글고 

도톰하고

징그러운데

계속 보니 살짝 귀여운 것 같기도?

 

입술을 벌려본 사람은 압니다

튤립이 어떻게 터번을 푸는지

너무 달콤한 건 척추를 지워요

오징어처럼

온몸이 흡반인 노래를 나에게 줘요

 

모든 꽃은 활짝 벌린 입술이라고

빅뱅도 참지 못한 꽃봉이라고

거기서 문어가 기어나오는 것입니다

당신을 감싸는 모든 낱말 벌판과 빨판

여기에 적힌 모든 말은 문어지요

아뇨 실은 시는 그냥 오징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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