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울림이 흐르는
- 주선화
장자제 대협곡
조그만 사잇길
잔잔한 웃음소리가 먼 듯 가까운 듯 종소리처럼 들렸다
남자는 흐르는 물에 푸성귀를 흔들어 씻고
여자는 아래쪽에서 빨래를 치대고
아이는 물장구치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외갓집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처럼 구름은 흐르고
오솔길 푸른 바람이 물결처럼 잔잔히 일렁이고 있었다
미소진 민얼굴 여지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냥 작은 울림이 날것 그대로 흐르고
눈을 떼지 못한 풍경에 사로잡혀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러다 뭔가 건네주고 싶었다
가방을 뒤져 사탕 하나를 아이에게 건네고
떨어지지 않는 걸음 재촉해 서둘러 내려왔다
이십여 년이 시나브로 흘러 색바랜 고궁을 걷는 듯
입안에 쓴 물이 흐르는 힘든 순간에도 어둡지 않은 까닭은
그때 그 모습 어제인 양
그 평온함이 그 아득함이 피어나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
간간이 염화미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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