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고마워의 진화 (외 1편) / 김미경

주선화 2025. 1. 27. 09:50

고마워의 진화 (외 1편)

 

- 김미경

 

 

  추측건데 92년생 다섯 살 짱구를 따라 하던

96년생 아이가 "엄마는 왜 고마워를 안 해? 내가

심부름을 해주면 고마워해야지." 그때부터

고마워는 내 등 뒤에서 언제나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림책을 읽어도 고마워, 세수해도

고마워, 양말을 신어도 고마워, 우유를 마셔도 

고마워, 수없이 고마워, 고마워 씨를 뿌리면

고마움이 잭의 콩나물처럼 자라 구름을 뚫고

홀씨를 날릴 거야. 고마워, 고마워하면서

앙코르와트로 갈 것이고 데칸고원을 지나 홍해를

갔다가 탄자니아를 지나 삼바 퍼레이드 사이에

머무르다 나이아가라 폭포에도 갈 것이고 제우스

신전을 돌아 성가족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수많은 나무와 꽃으로 빛날 거야. 조금 학습처럼

들리겠지만 고마워는 화성을 탐사하던 와트니가

키운 식물이야. 우주까지 갔다가 돌아올 거야.

그래서 고마워는 고마워요가 될 것이고 쓰나미가

되어 붕붕 썰매를 탈 거야. 설국 사람들이 고마워

고마워 노래 부르며 눈사람을 낳게 될 거야.

눈사람을 낳게 될 거야.

 

 

웃음과 울음은 닮았다

 

 

아침에 마시는 미온수 한 잔

문 앞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

 

햇살에 흔들리는 괭이밥

가장 어두울 때 반짝이는 별

 

추억의 팝송

알아들을 수 없는 오페라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하는 책

캄캄한 방

 

복도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순간 피었다 떨어지는 공작선인장

 

부드러운 미소

느리게 멀리 걷기

 

엄마가 왔다

엄마가 죽었다

 

불확실한 웃음이 배달되었다

근거 없는 울음이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