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고즈넉함과 하룻밤 (외 1편) / 신달자

주선화 2025. 1. 9. 17:14

고즈넉함과 하룻밤 (외 1편)

 

- 신달자

 

 

창너머 반달이 반짝 날 부르는가

분명 날 보고 한마디 던졌는데

내가 앉은 방은 작은 소음까지 심하게 쓰다듬어서일까

고요를 너무 만지작거려

딱 한마디 표현으로 멍한 고즈넉함이다

 

이걸 천복으로 알아야 하나?

나 오늘은 술병보다

 

고즈넉함이다

 

손이 깊숙이 쑤우욱 들어 가는 포근함

 

내 몸의 장기들도 녹아 사라진 듯

 

자위하듯

 

고요를 너무 만져 푹신푹신한

 

고요의 결이 다 닳아 미끄러운 듯

 

오늘도

뼈와 살이 다 흐르고 흘러 고요의 끝에 가 닿게

나 너와 잘래..

 

 

 

늙은 밭

 

 

늙은 밭에도 잡풀은 자란다

절반은 자갈이 들어박혀 수명 다해가는 거친 밭에도

돌 사이를 비집고 잡풀이 자란다

 

이렇게 천둥이 치고 치는 밤

늙은 여자의 밭에도 이름도 없는 바다의 해일이 쳐 들어 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잡풀이 온 몸을 덮어

회초리를 쳐도 죽지 않는 잡풀이 살 속을 흔들어

다만 누워 고요라도 암벽 타듯 끌어안아 라 한다

 

어쩌다가는 눈에 익은 배롱나무 한그루

무슨 인연으로 천둥 낙뢰를 혼자 맞으며

방에서 새어 나간 마음 한줄기

밤새 누가 울었는지 모르게 소나기 없었던 마당이 젖어 있다

 

다만 누워 어둠을 꼬아 사슬처럼 온몸에 두르니

누군가 이리떼처럼 운다 바스라지듯 운다

얼마나 단단한 심장인가 하늘이 내려와

땅을 덮고 땅이 솟구쳐 하늘을 껴안는

 

늙은 밭에는 홀로 울음을 달래는

산 그림자가 산다.

 

 

 

* 혼자만의 해설

 

처절한 외로움의 극치 온몸을 강타한다

늙은 여자의 비애를 한편의 시로 표현하는 신달자! 

멋진 시인이다^^

 

 

 

 

 

 

 

 

 

 

 

 

 

 

'마음에 드는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틈 / 이삼현  (0) 2025.01.22
누가 저 사유를 내다 버린 걸까 (외 2편) / 정영주  (0) 2025.01.13
허공에 매달린 무덤들(외 1편) / 이대흠  (0) 2024.12.26
분꽃 / 나석중  (0) 2024.12.21
여름 / 박남희  (2) 2024.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