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중력(重力)
-강영은
평생 걷다가 한 번쯤 만나는 그대가 극지(極地)라면 함박눈 쌓이는 하룻밤쯤은 극지로 가는 열차를 꿈꾸어도 좋겠네.
기차보다 먼저 도착하는 기적 소리에 실려 한 번도 닿지 않은 그대 마음 속, 극지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네.
함박눈 맞으며 걷고 있는 나는 여기 있지만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지만, 얼어붙은 빙하가 녹고 있는지
묵묵히 선 빙벽 아래 길을 내고 고요 속에 싹 트는 한 송이 꽃을 기다릴 수 있으리.
지구상에 홀로 남은 동물처럼 가다가, 서다가, 돌아서서 울다가 얼어붙은 대지와 한통속이 된들 어떠리.
발자국만 남긴 그림자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 미증유의 존재면 어떠리.
만남은 여기보다 조금 더 추운 곳에서 얼어붙고 헤어짐은 여기보다 조금 더 따뜻한 곳에 닿고 싶어 하는데
마지막 남은 눈사람처럼 눈 감고 귀 닫고 오로지 침묵 속에서 그대에게 닿을 순간을 기다리네.
나 여기 포근한 함박눈 속에 누워 있으니, 그대 함박눈 속을 다녀가시라. 모든 길은 몸속에 있으니, 목적지가 어디든 다녀가시라.
목숨이 오고가는 길도 하나여서 녹아내리는 손바닥 위의 눈송이
나, 함박눈 같은 극지에 도착하네. 함박눈 쌓이는 하룻밤이 수목한계선에 꽃으로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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