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땅거리다
- 유순예
으스러지도록 농사일만 하다 죽은
아버지 어머니가 두고 간
땅! 땅! 땅!
그 땅을 놀릴 수가 없기에 이 딸내미가 부쳐요
아버지 어머니 누워 있는
산소 밭에는 들깨를 심었고요
저온창고가 있는 밭 한쪽
너덜너덜한 비닐하우스 안
두 고랑은 쪽파를 심었고요
한 고랑은 양파를 심었고요
가상마다 진을 쳤던
잡초들은 확 뽑아버리고 월동 씨앗을 뿌렸고요
배추 상추 고수 고추 갓 시금치 ···
남새밭에서는 온갖 야채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요
나는 옴마처럼 안 살 것여!
앙탈 부리던 못된 것들이 곳곳에 처박혀서
눈물을 베고 잠이 들던 이 딸내미는
아버지 어머니를 꼭 닮은 농부가 되어가네요
땅! 땅! 땅!
이제야 저도 땅땅거리며 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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