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땅땅거리다 / 유순예

주선화 2025. 2. 25. 12:55

땅땅거리다

 

- 유순예

 

 

으스러지도록 농사일만 하다 죽은

아버지 어머니가 두고 간

땅! 땅! 땅!

그 땅을 놀릴 수가 없기에 이 딸내미가 부쳐요

아버지 어머니 누워 있는

산소 밭에는 들깨를 심었고요

저온창고가 있는 밭 한쪽

너덜너덜한 비닐하우스 안

두 고랑은 쪽파를 심었고요

한 고랑은 양파를 심었고요

가상마다 진을 쳤던

잡초들은 확 뽑아버리고 월동 씨앗을 뿌렸고요

배추 상추 고수 고추 갓 시금치 ···

남새밭에서는 온갖 야채들이 서로 잘났다고 다투고요

나는 옴마처럼 안 살 것여!

앙탈 부리던 못된 것들이 곳곳에 처박혀서

눈물을 베고 잠이 들던 이 딸내미는

아버지 어머니를 꼭 닮은 농부가 되어가네요

땅! 땅! 땅!

이제야 저도 땅땅거리며 살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