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목련꽃 허파 / 이은송

주선화 2025. 3. 12. 10:30

목련꽃 허파

 

-이은송

 

 

자정 무렵이면

나는

늘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으슥한 동네 골목을 서성이다가

목련나무 그림자를 훔쳐보곤 했어요

 

벌써 몇 년째 꽃이 만개했던 집 앞 목련은 제 꽃들을 어디론가 떠나보낸 후

제 발꿈치를 들고 허리춤에는 손을 넣고 슬금슬금 가로등 아래를 서성이는데

이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어요

 

그런 어느 날이었어요

어둠 속을 서성이던 목련나무가 길모퉁이에서 달을 올려보더니

슬그머니 옆길의 고물상 간판 앞에 서는 것,

녹슨 빗장을 소리도 없이 열고는 고물상을 비추는

달무리를 따라가

달의 허리를 끌어안고 스며드는 것이었어요

 

나는 숨소리도 없는 고요한 고물상 모퉁이

널브러진 녹슨 철제물들의 허파 위로

만월이면 목련꽃들과 달빛과 바람들이 몰려와

부드럽게 만개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떠나고 아프고 부서진 것들이 이곳으로 와 지친 몸을 기대고

달빛과 목련의 유두를 물고 숨 쉬는 것을 몰랐어요

 

저렇게 달빛들이 철제물 허파에 유두를 물린 사이

따라온 고양이는 느슨한 잠이 들고

아, 나도 몇 생이 걸려도 아련한 달의 심장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파닥이는 달의 심장으로 가서 만개한 목련꽃이 되고 싶어요

내 굳어버린 허파가

만개한 달의 젖을 물고 환한 목련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면

저 과묵한 철제물 같은 내 낡은 심장을 

달의 신전에 바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