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전면적으로 / 김미령

주선화 2025. 3. 31. 09:51

전면적으로
 
-김미령
 
 
어느 날 공사용 가림막이 전면에 펼쳐졌습니다
말수가 줄었습니다
당신의 아침 정원으로 기분 좋게 걸어 들어가는 
내 모습을 당분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꽃병을 마주 보고 끝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근력을 키우기에 좋습니다
과일 접시의 오와 열
그 샛길은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어느 날 포장지를 뜯어낸 새로운 애인이 우뚝 서 있고
 
새로운 기분에 적응하기까지
미간이 무럭무럭 넓어집니다
넓어진 이마로 지나치기 좋은 거리입니다
 
다른 종류의 웃음은 가끔 무섭습니다
 
가림막 한쪽 끝에는 구름다리가 걸려 있고
파스텔 톤의 저쪽 사람들이
손짓합니다
자고 나면 새로운 비밀이
공터의 야채들처럼 쑥쑥 자라나고
 
이쪽과 저쪽의 경계엔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우리가 안고 쓰러졌던 그 자리 주위로
쇼핑백을 들고 수없이 지나쳤습니다
뭔가 많이 달라졌지만
 
모르는 척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었습니다
 
 
* 이 시는 '관계'에 대한 시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고 복잡한 것이 인간관계죠. 
(모과의 시건축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