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천수천안관세음보살 / 김혜순

주선화 2025. 9. 27. 10:25

천수천안관세음보살

 

- 김혜순

 

 

머리를 땋고 나방이 되기로 한다

잠옷을 입고 당신 창문에 붙어보기로 한다

꽃무늬 재 모양으로 붙어 있다가 환한 당신의 귓속으로 저세상으로

 

머리를 땋고 말을 타기로 한다

땋은 머리가 치켜든 창처럼 공중으로 치솟는 질주!

몽골의 뺨 붉은 처녀가 성황당에서 애인을 만나러 초원을 달려간다

 

머리를 땋은 처녀가 두 손가락을 말아 담배를 피운다

머리를 땋고 바람줄기 두 개를 꼬아 목에 두른 아줌마가 담배를 피운다

머리를 땋고 코털 두 개도 땋은 할머니가 담배를 피운다

머리를 땋고 메트로놈이 되기로 한다

속눈썹을 길게 붙이고 네 창문에 붙어 심장 뛰는 소리 한번 크게 떨치기로 한다

나머지 구백아흔아홉 개의 눈을 마저 뜨기로 한다

 

머리를 땋고 나방이 되기로 한다

내 목을 휘감던 당신의 손길을 얇은 시스루 목도리 하나로 견뎌보기로 한다

몸이 썩은 다음엔 눈꺼플 한 쌍은 남아 네 창문에 붙어 깜빡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