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읽어 보는 시

줌바 버전 / 유선혜

주선화 2025. 10. 1. 08:49

줌바 버전

 

- 유선혜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는 로파이힙합이나 시티팝을 즐겨 들어요

너 그거 다 가짜지?

예리한 놈

 

플레이 리스트란 원래

저주와 애증으로 가득한

숨어 쓰는 일기장 같은 거니까

 

결연한 표정으로 단상에 올라가서

바지 지퍼를 내려버릴 듯이 말한다

이래야 제가 증명되겠습니까?

 

팬티를 내리고 나의 로고를 보여줘버려

로고 없는 짝퉁 가방은 없는 법이잖아

 

나는 저녁마다 동네 헬스장에 가서

중년 여성들이 줌바를 추는 모습을 봐

현란한 최신 유행 트로트를 틀어놓고

 

하나도 맞지 않는 박자 제멋대로인 동작

통일감이라고는 없는 상의와 하의

 

땀냄새가 진동한다

원투쓰리포 아 원투쓰리포 소리치는 줌바 강사님

탈의실에서 형님 밍크 사셨수? 하고 물으면

호호호 이거 짜가야 하고 웃는 줌바 회원님

 

수치심을 모르는 척 몸이 흔들린다

트럭이 뺑소니치고 가도 끄떡없는 몸

들것에 올라갈 때 박자에 맞춰 출렁이는 살과 피부

그래도 웃는다 억지로 웃으면 금니가 반짝이고

 

살아남은 밍크의 삶을 생각한다

그 검고 어리둥절한 눈동자를

 

그 노래는 말이야,

원곡 보다 줌바 버전이 더 좋다?

뽕짝거려서 더 신나

 

박자를 잘 못 맞춰도

그래도 춤을 춘다?

 

리듬을 못 타도 쿵짜작 쿵짝

몸치로 살아남아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