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 박소란
새 한 마리가 서성이는 좁은 골목
눈을 감았다 뜬다
진짜 새인지
그림자인지 그림자를 닮은 무언가 알 수 없는 무언가
불쑥 날아든 건지
창에 기대어 한참 동안
바깥을 내다보면 낯익은 누군가 바깥에서 안을
내다보고
어떤 그림자는 밟을 수 없다
너무 검어
너무 검게 울어
밤이면 조금 더 울고
금세 잠에 빠진다, 대개 그렇듯이
벽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라든지 천장에 고인 피라든지
그런 걸 봐도 놀라지 말아야지
꿈인지
꿈은 어떤 그림자인지
눈을 감았다 뜬다
수시로 그 집이 떠오를 때, 왜 마지막에
아버지 살던 집 말이에요
전화기 저편 늙은 고모는 이제 귀신에 가깝다
같이 가자, 같이 가자, 자주 연락해 오지만
나는 겨울 바다로 향한다
육각기둥 모양의 깎아지른 절벽이 아름답다는 주상절리를 구경하러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았다 떠도
둥둥 떠다니는 아버지의 앙상한 얼굴만 보이고
파도를 흉내 내는 새 한 마리
왔다 갔다
얼굴을 감싼다 빳빳한 빛으로 친친 동여 맨다
전화는 받지 않는다
절벽 아래 아슬아슬 선 여인은 웃으며 사진을 찍고
검은 드레스를 나부끼며
찢어진 날개를 마구 푸드덕거리며
나는 날아간다
그림자는 깊은 곳에 묻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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