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수작 / 배한봉 아름다운 수작 배 한 봉 봄비 그치자 햇살 더 환하다 씀바귀 꽃잎 위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 슬금슬금 수작을 건다 둥글고 검은 무늬의 빨간 비단옷 이 멋쟁이 신사를 믿어도 될까 간짓간짓 꽃대 흔드는 저 촌색시 초록 치맛자락에 촉촉한 미풍 한 소절 싸안는 거 본다 그때, 맺힌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 마음에 드는 시 2008.04.08
산 / 조은길 산 조 은 길 온몸에 젖꼭지가 있어 시도 때도 없이 주둥이를 들이미는 어미노릇이 몹시 힘겨웠던 산은 그 무엇도 담을 수 없이 가벼워지고 싶은 꿈이 있다 한 마리 연한 나비를 욕망 하는 것은 지극히 사치스럽지만 포기할 수 없는 꿈 산의 마음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계곡은 서둘러 물줄기를 산 밖으로.. 마음에 드는 시 2008.04.08
부적(符籍) 부적 (符籍)/ 권선희 아내는 지난 여름 떼로 몰려 온 우환을 겨우 치르고 삼재가 들었다는 말 한 마디에 뱀띠 부적 하나 똘똘 말아 끼운 단풍나무 목걸이 걸고 다니다 그만 잃어버렸는데요 다시 재앙의 복판에 선 듯 불안을 안고 살다 아무 래도 안되겠다며 떠난 밀양 어딘가에 있다는 그 절, 나 참, 대.. 마음에 드는 시 2008.04.01
봄이 오는 방/이정록 봄이 오는 방 / 이정록 농짝을 옮기자 찬바람이 들이친다 벽돌 모래알들이 바깥공기 잘 걸려준다 위풍 심하던 산동네여서 강마을로 이사 온 격이다 차가운 벽에 귀대고 물소리 퍼 담는다 살얼음 서걱거리는 모래와 마른 풀잎들 묵언에 든 물고기들의 잠꼬대도 엿듣는다 물새들의 발목에 달랑대는 깃.. 마음에 드는 시 2008.04.01
나무를 낳는 새 / 유하 나무를 낳는 새 / 유하 찌르레기 한 마리 날아와 나무에 키스했을 때 나무는 새의 입 속에 산수유 열매를 넣어주었습니다 달콤한 과육의 시절이 끝나고 어느 날 허공을 날던 새는 최후의 추락을 맞이하였습니다 바람이, 새의 육신을 거두어 가는 동안 그의 몸 안에 남아 있던 산수유 씨앗들은 싹을 틔.. 마음에 드는 시 2008.03.26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 안도현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어릴 때, 두 손으로 받들고 싶도록 반가운 말은 저녁 무렵 아버지가 돼지고기 두어 근 끊어왔다는 말 정육점에서 돈 주고 사온 것이지마는 칼을 잡고 손수 베어온 것도 아니고 잘라온 것도 아닌데 신문지에 둘둘 말린 그것을 어머니 앞에 툭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한마.. 마음에 드는 시 2008.03.25
물의 안쪽 / 문태준 思慕 /문태준 -물의 안쪽 바퀴가 굴러간다고 할 수밖에 어디로든 갈 것 같은 물렁물렁한 바퀴 무릎은 있으나 물의 몸에는 뼈가 없네 뼈가 없으니 물소리를 맛있게 먹을 때 이(齒)는 감추시게 물의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네 미끌미끌한 물의 속살 속으로 물을 열고 들어가 물을 닫고 하나의 돌같이 내 몸.. 마음에 드는 시 2008.03.24
이슬처럼 / 황선하 이슬처럼 / 황선하 길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살고 싶다. 수없이 밟히우는 자의 멍든 아픔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도 아침 햇살에 천진스레 반짝거리는 이슬처럼 살고 싶다 한숨과 노여움은 스치는 바람으로 다독거리고 용서하며 사랑하며 욕심없이 한 세상 살다가 죽음도 크나큰 은혜로 받아들여, 흔.. 마음에 드는 시 2008.03.20
소곡 / 최명학 소곡 / 최명학 사람이 사람과 사는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사람은 알 일이다 꽃이 저를 흔드는 바람의 뜻을 모르듯 사람은 사람이 곁에 서 있는 뜻을 모른다 흔들흔들 흔들리며 꽃이 살아 있듯 부대끼는 슬픔으로 사람은 산다 마음에 드는 시 2008.03.20
붉은 눈 / 임정옥 붉은 눈 / 임정옥 여름비 쏟아지는 추령고개 닭장차 뒤를 따라 느릿느릿 달린다 철망 밖으로 대가리 내밀고 소낙비 세차게 맞는 중닭의 무리 동그란 눈으로 신기한 듯 밖을 살핀다 철망 안쪽에 무리지은 닭들은 닭장차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퇴화된 날개 펼쳐보지 못한 채 이리 저리 나동그라진다 내 .. 마음에 드는 시 2008.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