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드는 시

붉은 눈 / 임정옥

주선화 2008. 3. 13. 17:03

붉은 눈 / 임정옥

 

 

여름비 쏟아지는 추령고개

닭장차 뒤를 따라 느릿느릿 달린다

철망 밖으로 대가리 내밀고

소낙비 세차게 맞는 중닭의 무리

동그란 눈으로 신기한 듯 밖을 살핀다

철망 안쪽에 무리지은 닭들은

닭장차 고개 하나 넘을 때마다

퇴화된 날개 펼쳐보지 못한 채

이리 저리 나동그라진다

내 유리창에 빗물이 쏟아져 내려

윈도우 브러시 사이로 잠깐 잠깐씩

마주치는 수십 수백 개의 저 붉은 눈

나도 저런 눈빛으로 세상 본 적 있다

그 해 오월 닭장차에 실려 갔던

내 청춘도 저 붉은 눈빛 뒤편으로 사라진다

점점 빗방울 굵어져

내 심장에 구멍 숭숭 뚫리는데

며칠 전 먹은 치킨 샌드위치처럼

차와 차 사이 닭장차 끼어 고개 넘는다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운데

좁은 고갯길 추월선은 없다

차안의 선한 동행들 저걸 어째,

저걸 어째, 고개 돌리고 말이 없다

돌아와 나물 비빕밥을 먹는 내내

텔레비젼은 내일이 초복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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