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 (放心)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
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
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낮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
이 사랍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
젖히고 <2006년>
*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 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며 살아왔을 뿐,
손택수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정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사람들의 천문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 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 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 (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 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 (달과 토성의 파종법) 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그의 시에 든든한 윈군은 '삶, 그 자체'라는 믿음이 다시금 일깨워 준다 <문태준시인>
'현대시 추천 10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0) | 2008.04.02 |
---|---|
진달래꽃 / 김소월 (0) | 2008.04.01 |
농무 (農舞) / 신경림 (0) | 2008.03.29 |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0) | 2008.03.28 |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0) | 2008.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