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추천 100

방심 (放心) /손택수

주선화 2008. 3. 31. 16:45

방심 (放心)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

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

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낮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로

앞뒤로 뻥

뚫려버린 순간,

 

제비 아랫배처럼 하얗고 서늘한 바람

이 사랍문을 빠져 나가는 게 보였다 내

몸의 숨구멍이란 숨구멍을 모두 확 열어

젖히고 <2006년>

 

 

 

* '마음을 놓다'라는 말, 참 오랜만이다 마음을 풀어 놓아 버린 일 얼마나 오래 되었나,

마음 졸이며 염려하며 살아왔을 뿐,

 

손택수 시인은 긍정심이 아주 많은 시인이다. 다른 존재들의 '빛나는 통증'을 그의 시는 받아 안는다

그의 시는 그가 어렸을 때 그곳서 자랐다는 전남 담양 강정리 마을을 배경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곳 사람들의 천문적인 상상력은 그의 시에 들어와 크게 빛을 발하면서 새로운 서정을 만들어 낸다

"별이 달을 뽀짝 따라 가는 걸 보면은 내일 눈이 올랑갑다" (가새각시 이야기)라고 말씀 하시는 할아버지와 매달 스무 여드렛날은 "달과 토성이 서로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 흙들이 마구 부풀어오르는 날" (달과 토성의 파종법) 이자 '땅심이 제일 좋은 날'이라며 밭에 씨를 뿌리러 가던 할머니의 상통천문(上通天文)이 자주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콧구멍에는 흰 쥐와 검은 쥐 두 마리가 혼쥐로 살고 있다는 믿음, 임신한 몸으로 시큼하고 골코롬한 홍어를 먹으면 태어날 아이의 살갗이 홍어처럼 붉어진다는 믿음

 

그의 시에 든든한 윈군은 '삶, 그 자체'라는 믿음이 다시금 일깨워 준다 <문태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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